이 소설의 첫 책장을 넘겼을 때 나는 하루키가 이제 다 되었나…? 하는 생각이 들었다.
이 내용은 이미 읽은 적이 있는데..? 하루키 소설 <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>의 세계관과 소재와 인물의 성격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동일했다. 그래서 읽으면서도 ‘이거 재탕한 거 아니야?’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.
무라카미 하루키도 나이가 70세가 넘어 소재가 고갈된 것인가? 그래서 중간쯤 읽다가 덮고 다른 소설을 읽었다. 책도 700페이지가 넘어 긴 데다 같은 내용을 또 읽으니 지루해져 버리고 말았다.
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작가의 후기를 보고 알았다. 40년 전에 썼던 <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>를 완성시킨 작품이라는 걸. 그러고 보니 모든 게 이해가 됐다.
하루키의 소설에는 늘 그렇듯
클래식 음악과 맥주, 요리, 섹스
그리고 이 소설에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 현재를 반영했다는 점이다. 스마트폰, 인터넷 쇼핑과 같은 요즘 물건들이 나온다. 이 전 소설은 70-80년 대가 시대 배경이라 좀처럼 현대적인 물건이 없었다. 그럼에도 충분히 세련되고 감성적인 글이었다.
이 소설이 마스터 피스라고는 할 수 없어도 (이미 ’ 상실의 시대‘로 걸작을 썼기에..) 지금까지 하루키 소설을 초망라한 소재들이 다 나온다.
죽음, 상실, 소외, 고독, 사랑 그리고 내면의 트라우마
하루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젊은 와타나베이거나 나이가 든 와타나베라고 할 수 있다. (상실의 시대 주인공) 책 많이 읽는 고독한 감성적인 육식남.
재밌는 건 이 <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>의 주인공 ‘나’는 (이름을 모르겠다) 여태껏 등장인물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. 40대 중반. 여전히 혼자고 고독하며 사랑을 찾고 있다.
그런 면에서 새삼 하루키에게 ’ 자식이 없다 ‘는 사실을 상기했다. 결혼해서 와이프는 있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다. 그래서 그런지 1949년 생 하루키가 (76세) 여전히 이런 감성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? 그 사실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.
그리고 그 나이에도 여전히 내면의 젊음과 방황을 그릴 수 있다는 건 아마 수영과 조깅으로 단련된 건강한 신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.
소설을 읽으며 그간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오르는 한편 영화 <인셉션>도 생각났다. 내면의 깊숙이,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들어간다. 그래서 하루키를 읽는 게 아닐까? 이래서 하루키가 아닌가.
정말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소설 (그래서 그런지 표지에 제목보다 작가 이름이 더 크다)